인도 축구 국가대표팀

 


[image]
'''인도 축구 국가대표팀'''
'''भारतीय राष्ट्रीय फुटबॉल टीम'''
'''정식명칭'''
भारतीय राष्ट्रीय फुटबॉल टीम[1]
India national football team[2]
'''FIFA 코드'''
IND
'''협회'''
전인도 축구 연맹 (AIFF)
'''연맹'''
아시아 축구 연맹 (AFC)
'''지역연맹'''
남아시아 축구 연맹 (SAFF)
'''감독'''
이고르 슈티마츠 (Igor Štimac)
'''주장'''
수닐 체트리 (Sunil Chhetri)
'''최다출전자'''
수닐 체트리 (Sunil Chhetri) 115경기
'''최다득점자'''
수닐 체트리 (Sunil Chhetri) 72골
'''홈 구장'''
솔트레이크 스타디움 (Salt Lake Stadium)
'''첫 국제경기 출전'''
VS 프랑스 (1:3 패), 영국 런던 (1948년 7월 31일)
'''최다 점수차 승리'''
VS 실론 (7:0 승), 인도 방갈로르 (1963년 12월 29일)
'''최다 점수차 패배'''
VS 소련 (1:11 패), 소련 모스크바 (1955년 9월 16일)
'''별칭'''
Blue Tigers (파란 호랑이)
'''아시안컵'''
출전 4회, 준우승 1회 (1964)
'''올림픽'''
출전 4회 (1948, 1952, 1956, 1960)
'''유니폼 컬러'''
'''홈'''
'''어웨이'''
'''상의'''
'''파랑'''
'''흰색'''
'''하의'''
'''파랑'''
'''흰색'''
'''양말'''


인도축구 국가대표팀을 다루는 항목.
1. 개요
2. 역대전적


1. 개요


2019년 4월 기준 피파랭킹 101위의 약체이다. 홈 구장은 솔트레이크 스타디움이며 감독은 이고르 슈티미츠다. Blue Tigers (파란 호랑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14억 인구가 무색하게 한 번도 월드컵 본선에 오르지 못한 최약체 국가다. 사실 처음부터 약체는 아니었다. 축구 종주국 영국의 가장 큰 식민지였던만큼 그시절의 가락이 남아있던 1950~60년대 중반까진 아시아에서 강호축에 드는 국가였다. 1950년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적도 있다. 1938 월드컵에 처음으로 진출했던 동인도[3]에 이어 아시아에서 2번째 진출이자, 아시아 국가로서 사상 첫 월드컵 진출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맨발로 경기에 임하길 요구했다가 피파 규정에 부딪쳐 거부당했다. 그래서 인도 측이 참가를 거부하면서 월드컵 진출권을 스스로 기권하며 1954년 월드컵에 진출한 대한민국이 아시아 독립국가 첫 진출국이 되었다. 이 기권에 피파에서 1954년 월드컵 참가 자격을 박탈하는 처벌을 내렸으며 인도도 울컥하여 1982년 월드컵까지 아예 지역예선을 불참했었다. 인도의 이런 행보는 한국에 행운이었는데 만약 인도의 기권과 그에 이은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출전자격 박탈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스위스 월드컵 진출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4]
사실 인도의 월드컵 진출 또한 따지자면 매우 운이 좋았다. 당시 아시아 예선에 나온 나라는 인도와 인도네시아, 필리핀, 버마뿐이었다. 당시 아시아에선 한국은 독립 이후 분단으로 제대로 정신도 없었고 일본은 미국 식민지나 다를 거 없던 신세였고 패전 이후 여러 복구 문제로 골머릴 앓았으며 중국도 대만과 분열되어 전쟁을 치른 터라 역시 마찬가지였고 아랍권 나라들도 이스라엘과 중동전쟁 문제, 각 나라들의 내부 문제로 정신이 없었던 와중이었다.
물론 예선에 참가한 4나라 모두 독립한 지 얼마 안 돼 경제, 정치적으로 어렵기 마찬가지였던지라, 다른 3나라는 1경기도 치루지않고 기권해버렸다. 즉 1경기도 안 치루고 월드컵 본선에 올랐던 것. 물론 이 4나라에서 인도가 가장 강했기에 어차피 경기를 해도 인도가 진출할 가능성이 압도적이긴 했지만 결국 인도도 기권해버렸으니 무용지물.
그렇긴 해도 다른 국제 대회에서 인도 축구는 1951년, 62년 아시안 게임 축구 금메달 및 1956년 올림픽 4강(4위)에 올라 아시아 나라로는 처음으로 올림픽 축구 4강에 올랐다.[5] 1964년에는 아시안컵 준우승(우승은 이스라엘)도 차지하며 아시아에서 강호이던 시절이 있었다.
비록 소련 축구 국가대표팀과 1955년 원정 친선 경기에서 1:11 대패를 당하긴 했지만. 이 시절 소련이 월드컵 4강급 강호였긴 했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 이후로부터 세계축구의 흐름에 뒤쳐지며 축구실력은 점차 쇠퇴하기 시작하여 약체가 되어나갔고 1986년 월드컵 지역예선에 36년 만에 나섰는데 1차예선에선 방글라데시태국, 인도네시아에게 2승 3무 1패를 거두며 조 2위로 탈락했고 1990 월드컵 예선도 아예 불참해버렸다. 이후로 최종예선도 못오고 있는 상황이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선 2차 예선에서 아랍에미리트에게 1무 1패(0:3, 2:2)로 탈락했다. 2013년 12월 피파랭킹은 154위로 아시아 약체이다. 그나마 이후 좀 성적을 거둬서인지 2018년 9월 피파랭킹은 97위까지 올랐다.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당시 축구 예선에서 일본이 고전 끝에 인도에 1-0으로 겨우 이기자 여론에게 약체에 고전했다며 신나게 비난당했을 정도이다.
주로 크리켓, 필드하키의 인기에 밀려 축구가 발전하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13억이 넘는 인도 인구 중에서 동부 쪽을 중심으로 축구열기가 장난이 아니라 축구 관련 산업은 상당한 수익을 거두고 있다. 덕분에 피파가 인도 시장에 군침을 흘리면서 인도 축구 분야 지원에 앞장서고 있으며 심지어 제프 블라터 피파 회장이 2026 월드컵을 인도나 중국이 공동개최 및 개최국 후보로 나서도 될 거 같다는 말을 괜히 한 게 아니다.
더불어 남아시아 챔피언십 대회[6]에서 6번 우승한 최다 우승국가로 적어도 인도 근처 지역에선 강호(?)인 셈이다. 남아시아 축구대회가 현재까지 10번이 열렸으니, '''무려 10번 중 6번을 인도가 우승'''할 정도로 근방에선 따라올 자가 없다(...). 2013년 네팔에서 열린 대회에선 첫 경기 네팔전에서 1-2로 패하고도 결승까지 진출했으나 아프가니스탄에게 0-2로 패하며 7번째 우승은 실패했다. 2013 남아시아 챔피언십 상세한 이야기. 그러나, 2015년 이 대회에서 다시 아프가니스탄을 제치고 우승했다.
거꾸로 AFC 챌린지컵에서는 대회 초반에는 잘하다가 갈수록 동네북이었다. 2006년 1회 대회는 8강에 진출했고 2008년 자국에서 열린 2회 대회는 우승했지만 2010년에는 북한에 0-3으로 진 것을 비롯하여 조 꼴찌로 탈락하고 2012년 네팔에서 열린 대회에서도 북한에 0-4, 타지키스탄, 필리핀에 0-2로 지면서 1골도 못 넣고 또 조 꼴찌로 탈락했다. 2014년 마지막 대회에서도 라오스와 투르크메니스탄에 덜미를 잡혀 일찍 탈락했다.
한국과 역대성적은 3승 2무 14패로 열세에 있다.[7] 1958년 5월 31일 일본 도쿄 아시안게임 준결승에서 첫 친선경기를 벌인 게 첫 인도와의 축구경기인데 3-1로 한국이 이겼다. 1966년 8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메르데카컵 3·4위전에서 2-3으로 진 게 마지막 패배이며 1976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메르데카컵에서 8-0으로 이긴 게 가장 크게 이겨본 역대 인도 경기이다. 가장 최근에서 겨뤄본 경기는 2011년 AFC 아시안컵 조예선으로 한국이 4-1로 이겼다.
2018년 남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여유롭게 결승에 올랐으나 조예선에게 이긴 몰디브에 1-2로 패해 8번째 우승은 실패했다.
2018년 10월 13일. 중국과 평가전을 가졌는데 둘이 치열하게 경기를 벌인 끝에 무재배로 끝났다. 사실상 중국에게 치욕이었는데 중국 안방인 쑤저우 경기장에서 수만여명 중국 팬들이 보는 앞에서 치뤄진 경기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기 전 마르첼로 리피 중국 대표팀 감독은 '''"중국은 아시아 모든 나라를 이길 수 있다"'''라는 인터뷰를 하고 경기에 임해서 피파랭킹으로 76위 중국이 97위 인도를 상대로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2019 AFC 아시안컵 본선에 진출, 개최국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태국과 맞붙게 되었다. 태국과 3위 경쟁을 할 것이라고 예측되면서 서로 혈전을 벌이리라 예측이 나왔지만 완전히 4-1로 뭉갰다. 태국이 자랑하는 주전인 J리거 차나팁 송크라신은 별다른 활약도 못했고 거꾸로 인도가 자랑하는 수닐 체트리는 2골을 넣으며 승리 주역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태국과 인도는 각자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 대회인 스즈키컵 최다 우승으로 서로 자기 지역의 최강급 우승후보인데 인도가 압도했다. 아시안컵을 통해 드러난 인도 축구의 특징은 피지컬. 이 대회에 참가한 인도팀의 평균신장은 180cm로 참가국 가운데 9위이며, 음식 안가리고 신체단련을 중시하는 시크교도들이 기존 인기종목인 크리켓과 필드하키를 넘어 축구계까지 진출하면서 남아시아권에선 피지컬로 당해낼 팀이 없어졌다. 아직 한경기를 치렀을 뿐이지만 이 경기를 통해 인도가 괜히 중국과 비긴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2차전인 UAE전에서는 0:2로 완패했으며 3차전인 바레인전에서는 후반 인저리타임에 실점하면서 0:1로 패배, 결국 A조 최하위로 떨어지면서 16강에 오르지 못했다.
주요 선수로 포르투갈 2부리그, 미국 MLS 경력이 있는 수닐 체트리가 있다. 현 인도 A매치 최다골 기록자. 수닐 체트리 이전 인도축구의 레전드로는 바이충 부티아라는 선수가 있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바이충 부티아를 박지성, 수닐 체트리를 손흥민에 비유할 수 있을 정도의 인도축구계에서 두 선수의 위상은 대단하다. 바이충 부티아는 1999년 잉글랜드 하부리그인 베리 FC에 입단하며 인도인으로는 2번째로[8] 유럽에 진출한 선수였으며, 3년동안 37경기에 출전했다. 주전으로 뛰지는 못했지만 유럽 무대의 개척자로써 업적은 충분하다. 또한 수닐 체트리는 바이충 부티아의 국가대표 은퇴 이후 대표팀 에이스 지위를 물려받았고, MLS포르투갈 세군다 리가에도 진출하는 등 해외진출에도 성공한다. A매치 115경기 72골을 넣으며 인도 축구 역사상 최다 A매치 골 기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손흥민과 다른 점은 해외에서는 별다른 족적을 못남겼다는 것... 그럼에도 그는 인도 올해의 선수상 6회 수상, AFC 아시안컵 본선 통산 4골으로 인도인 최다골 기록 보유 등등 인도 내에서 독보적은 기록을 쌓은 레전드라고 할 수 있다.
현재는 인도 대표팀에서 해외파는 전무한 상황인데, 꼭 부정적이라고 볼 수만은 없는 것이 과거와 달리 국내 리그가 많이 발전한 것이 그 원인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근 10년동안 인도 축구는 큰 변화를 겪었는데 바로 인도 슈퍼 리그가 2014년 출범하였고, 이 새로운 리그에 인도 내의 스포츠 자본이 몰리면서 은퇴를 앞둔 뛰어난 레벨의 선수들이 많이 진출해서 뛰었기 때문이다. 인도 슈퍼 리그는 단숨에 인도 팬들의 관심을 끌었고, 당초 3개월짜리 초단기 리그로 운영되던 슈퍼 리그는 아예 연중 정규 리그화가 되어 기존의 인도 I리그와 동등한 인도 최상위 리그의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다. 따라서 인도 선수들은 더 좋은 대우를 받으면서 자국의 프로축구에서 뛸 수 있게 되었고, 대표급 선수들이 거의 대부분 슈퍼 리그에서 뛰고 있다. 추후 슈퍼리그는 아예 인도의 단일 최상위 리그로써 기능할 예정이며 기존의 I리그는 슈퍼리그의 하부리그로 재편될 예정이다.
현재 유니폼 스폰서는 six5six 이다.

2. 역대전적



2.1. FIFA 월드컵


년도
결과
순위
경기



득점
실점
1950 브라질 월드컵
기권[9]
1954 스위스 월드컵
출전금지
1958 스웨덴 월드컵
불참
1962 칠레 월드컵
불참
1966 잉글랜드 월드컵
불참
1970 멕시코 월드컵
불참
1974 서독 월드컵
불참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불참
1982 스페인 월드컵
불참
1986 멕시코 월드컵
예선 탈락
1990 이탈리아 월드컵
기권
1994 미국 월드컵
예선 탈락
1998 프랑스 월드컵
예선 탈락
2002 한일 월드컵
예선 탈락
2006 독일 월드컵
예선 탈락
2010 남아공 월드컵
예선 탈락
2014 브라질 월드컵
예선 탈락
2018 러시아 월드컵
예선 탈락
2022 카타르 월드컵
?
?
?
?
?
?
?
?
합계
본선진출 없음
0/21[10]







2.2. AFC 아시안컵


'''AFC 아시안컵 역대 순위 : 19위'''
년도
결과
순위
승점
경기



득점
실점
홍콩 1956
기권
대한민국 1960
예선 탈락
이스라엘 1964
'''결선리그[11]'''
'''준우승'''
'''6'''
3
2
0
1
5
3
이란 1968
예선 탈락
태국 1972
기권
이란 1976
기권
쿠웨이트 1980
기권
싱가포르 1984
조별리그
10위
'''1'''
4
0
1
3
0
7
카타르 1988
예선 탈락
일본 1992
예선 탈락
아랍에미리트 1996
예선 탈락
레바논 2000
예선 탈락
중국 2004
예선 탈락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 2007
예선 탈락
카타르 2011
조별리그
16위
'''0'''
3
0
0
3
3
13
호주 2015
예선 탈락
아랍에미리트 2019
조별리그
17위
'''3'''
3
1
0
2
4
4
합계
준우승(1회)
4/17
'''10'''
13
3
1
9
12
27

[1] 힌두어[2] 영어[3] 현재 인도네시아. 그 당시엔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다.[4] 스위스 월드컵 이후 한국의 월드컵 진출은 오세아니아와 아시아가 분리되고 아시아의 티켓이 2장으로 늘어 더이상 중동팀들과 박터지는 서바이벌을 할 필요가 없어진 1986년 멕시코 대회부터 가능했다.[5] 그 이후에 올림픽 축구에서 4강에 오른 아시아 국가로는 일본(1968년 동메달, 2012년 4위), 이라크(2004년 4위), 대한민국(2012년 동메달)이 있다.[6] 인도, 네팔, 아프가니스탄, 방글라데시, 부탄, 몰디브, 파키스탄, 스리랑카가 참가하는 대회[7] KFA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45승 6무 5패로 나오지만, 자세히 보면 인도네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성적과 혼합되어 있다(...). 대한축구협회의 안일한 기록 관리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8] 1930년대 모하메드 살림 이라는 선수가 셀틱에 진출한 적이 있다.[9] 지역예선에서 다른 팀들이 줄줄이 기권하는 바람에 공짜로 월드컵에 승선할 기회를 얻었지만, 맨발로 축구를 하게 해달라는 인도 축구협회의 요구가 FIFA에 의해 묵살되면서 조별예선 배정까지 끝난 상태로 기권하고 말았다. 월드컵 사상 가장 어이없는 이유로 기권. 하지만 이러한 명분의 이면에는 당시 인도가 독립한지 3년밖에 안된 신생국으로, 파키스탄 분리와 티베트 사태로 인한 안보 문제 때문에 월드컵을 포기했다는 설이 있다. 이는 소련과 전쟁 일보직전까지 갔던 터키도 마찬가지.[10] 월드컵 본선 출전 비율[11] 이 대회는 4개국이 풀리그로 진행하는 대회였다.